습관은 원래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습관이 나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조금 덜 흔들리기 위해,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삶을 정돈하기 위해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습니다.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이전보다 안정감이 생기고, 나를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습관의 위치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습관이 내 삶을 설명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는 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이 글은 습관을 못 지킨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습관을 비교적 잘 유지해온 사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습관이 나 자신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습관이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는 순간
습관을 오래 유지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나는 원래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이고, 나는 기록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며, 나는 루틴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꽤 긍정적으로 느껴집니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하고, 삶이 정리된 사람 같다는 인상도 줍니다.
하지만 이 말이 반복될수록, 습관은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제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닌 것 같아서가 됩니다.
기록을 하는 이유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록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배신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습관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닙니다.
선택이 아닌 것은 쉬기 어렵습니다.
예외를 두기 힘들고, 상황에 따라 조절하기도 어렵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위해 붙잡고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 행동을 내려놓는 순간 나 자신도 함께 흔들리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억지로 하게 되고, 바쁜 날에도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이쯤 되면 습관은 나를 돕는 장치라기보다, 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증명해야 하는 기준이 됩니다.
습관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바뀔 때
습관이 나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하루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하루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감정이나 만족감이 아니라, 습관을 지켰는지 여부가 됩니다.
습관을 지킨 날은 비교적 괜찮은 하루처럼 느껴지고, 습관을 지키지 못한 날은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함이 남습니다.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무거워지고, 하루 전체가 어딘가 부족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때부터 습관은 삶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평가의 잣대로 작동합니다.
잘 지켰을 때는 당연한 일이 되고, 못 지켰을 때는 스스로를 실망시키는 이유가 됩니다.
이 구조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존감에 영향을 미칩니다.
습관을 못 지킨 날이 곧 내가 게으른 날, 내가 흐트러진 날, 내가 관리하지 못한 날처럼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는 그날 하루가 충분히 힘들었을 수도 있고, 다른 중요한 일들을 해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 하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전체가 평가절하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습관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처음에는 나를 돕던 행동이, 나를 계속 판단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습관에 맞춰 나를 고정시키게 되는 문제
습관이 나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변화가 어려워집니다.
이미 오래 유지해온 습관은 과거의 나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맞는지는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습관이 정체성이 되어버리면, 이 질문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이 습관을 버리면 지금까지의 내가 부정되는 것 같고, 이 습관을 쉬면 지금의 내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버거워진 습관을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효과가 예전 같지 않아도, 의미가 흐려져도, 그냥 해왔다는 이유로 계속합니다.
이때 삶은 조금씩 경직됩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에너지가 달라져도, 습관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규칙처럼 남아 있습니다.
나는 변했는데, 나를 설명하는 습관은 여전히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결국 습관에 맞추기 위해 나를 조정하게 됩니다.
피곤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쉬고 싶어도 참아내고, 나에게 필요한 변화보다 습관 유지를 우선시합니다.
이 지점에서 습관은 더 이상 삶을 유연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한 자리에 묶어두는 역할을 합니다.
습관은 나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돕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습관이 나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 생기는 문제는 분명합니다.
습관이 커질수록, 나는 그만큼 좁아집니다. 선택의 여지는 줄어들고, 예외를 허용하는 데 죄책감이 붙습니다.
습관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습관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습관이 아직도 나를 돕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나를 설명하기 위해 붙잡고 있는지 말입니다.
습관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문장이 아닙니다.
내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일 뿐입니다.
그 순서가 바뀌는 순간, 습관은 조용히 부담으로 변합니다.
잘 지켜온 습관을 잠시 내려놓는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설명하던 말이 하나 줄어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나에게 더 맞는 선택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습관은 나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보다,
나를 덜 설명해도 괜찮게 만들어줄 때 가장 건강하다고 느낍니다.